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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와 차례의 차이점

by 딩도 2023.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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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 되면 우리는 친척들과 같은 가족들이 모여서 행사를 지내게 됩니다.

근데 어디서는 ‘제사’ 지낸다고 부르고 어디에서는 ‘차례’ 지낸다고 부르는데 제사와 차례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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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제사(祭祀)란 신이나 신령, 죽은 사람의 넋 등에게 제물을 봉헌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따라서 고대 종교의 신전 제의, 가톨릭의 미사 등도 일컫는 폭넓은 개념이지만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주로 조상제사의 의미로 쓰인다고 합니다.

전 세계 어디에나 제사에 해당하는 조상 추모 의식은 존재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제사라 함은 유교적 제례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유교식으로는 기본적으로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제주'의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었고 이게 넘어가면서 매안(埋安)이라고 하여 신위를 사당에서 옮겨 땅에 묻고 원칙적으로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5대조 이상의 조상은 개개인의 기일이 아닌 음력 10월에 동시에 기리는 묘사(墓祀)를 지내거나 큰 공을 세운 조상의 신위는 시대가 지나도 옮겨 그만두지 않고 계속 제사를 지내는 불천위(不遷位) 같은 예외가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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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의 유래
신이나 신령, 조상 등에게 봉헌하는 의식은 유교뿐 아니라 수많은 종교에서 관찰되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지중해 문화권의 고대 종교들에서는 훌륭한 제사는 '경건함'의 주요한 예시였고 동아시아에서는 갑골문에서 수많은 제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종교가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 인식되지만 종교가 공적 영역으로 인식되던 고대에는 개인과 공동체의 신심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제사가 자연스럽게 중시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제사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자 문화권 바탕에 한반도의 지역적 특성이 섞여서 형성된 것인데 고대 중국 상나라(은나라)의 왕 조갑이 주변 토착신을 배제하고 조갑의 직계 조상만 섬기는 조상신 풍습을 만들게 되는데 이러한 조상을 섬기는 문화에서부터 제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상나라는 주나라에 의해 멸망당했지만 주나라는 위에서 조갑이 퍼뜨린 풍습을 따라 상나라의 제사방식을 이어받았는데 그뿐만 아니라 상나라의 전 지도층을 제후로 임명해 상나라 조상에 대한 제사를 계속 이어가도록 했습니다.

이것도 다른 가문의 제사를 끊기게 하면 그 사람에게 제사가 끊어진 조상귀신들이 재앙을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떠돌이 생활을 하며 왕들을 가르치던 공자가 상나라 제사 문화를 재정비했다고 합니다.

일반명사로서 제사의 뜻은 이렇지만 흔히 한국에서 '제사'라고 하면 '조상 제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수단으로써 행해진 제사는 중 근세에 이르러 유교와 결합하여 조상숭배의 제도로 고착되었으며 또한 종교적 의미를 가지면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정교가 분리된 이후에도 황제는 하늘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며 자신의 조상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권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다만 제후국을 자처한 조선의 왕은 하늘에 대해 제사를 지낼 수 없었고 왕조의 조상신(종묘)과 땅의 신(사직)에는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또한 가정에서는 효의 의미를 가져 가문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종교적 면은 사후세계의 인정을 통한 유교 특유의 간접적 영생법의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고려, 조선 전기까지는 아들딸 상관없이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받고 제사의 주체에서도 남녀차별이 없었다면서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출가외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남녀 구별 없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셨으며 기혼 남성이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시집간 누나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소중화 의식이 강해지면서 유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장남이 아버지의 재산 2/3을 받고 나머지를 다른 아들들이 나누고 딸은 받지 못하는 인습(因習)이 집성촌일 경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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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차례(茶禮)라는 이름은 고려 시대 때 차를 제사상으로 올리던 문화의 라고 합니다.

이름대로 원래는 차를 올렸지만 조선 시대 때 숭유억불로 불교색을 빼면서 술을 올리는 것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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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와 차례의 차이점

 

제사와 차례의 차이점을 요약하자면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에 간단히 지내는 제사를 차례라고 한다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 특별한 명절(설날, 추석 등)에 한해서 제사가 아니라 차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즉, 차례는 제사에 포함되는 개념이며 제사의 특별한 케이스가 차례입니다.

그러니 설날이나 추석에 지나는 제사도 '제사'라고 불러도 무방하며 딱히 틀리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모든 제사를 차례라 부르진 않으며 그렇게 부르는 것은 틀린 표현입니다.

일반적으로 제사라고 하면 기제사를 가리키는데 기제사란 죽은 사람의 기일에 그 사람만을 위해 지내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기제사든 차례든 보통 제주 위로 돌아가신 4대 조상까지 지내는 건 마찬가지지만 명절 등에 지내는 차례는 4대 조상까지 연달아 대접하는 제사를 의미하므로 기제사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차례는 삼국사기 제사지의 내용이나 중국의 차가 전해지고 재배한 역사를 감안하면 명절 제례로 신라시대부터 지낸 것으로 추정되고 이름 그대로 원래는 차를 올리는 다례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교가 국교이던 신라, 고려시대와 차라는 부분을 고려하면, 세시풍습 + 계절제와 불교식 성향이 더해져서 탄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한 조선시대가 되면서 불교식 세시풍습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세시 풍습도 유교식으로 변화해 간다며 실제로 조선시대 예법의 기본 취급받는 주자가례 중 참례와 천신례는 세시의 제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때 초일에는 술과 차를 그리고 보름에는 차만을 올렸다고 합니다.

다만 술 대신 차를 올리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불교 냄새가 강하다는 생각도 있었고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 차는 엄청난 고급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아무래도 중국에서는 차를 올리지만, 조선은 술이죠"를 외치면서 차례상에서 차를 빼고 술을 채워 넣었다고 합니다.

이후 명절에 지내는 제사의 다른 이름이 된 것은 조선 후기 성리학적 성향이 강해진 영향으로 보인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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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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